그것은 알기 싫다 455a
사람들은 납득되지 않은 부분을 음모론으로 채운다.
56분 28초 청와대 흉지론의 기원
- 1992년 노태우 대통령: 청와대를 지금의 모습으로 재개관
- 김영삼 대통령: 최초로 광화문 집무실 공약
- 청와대 흉지론은 일종의 도시전설. 현대에 창조된 학설
- 최창조 교수: 1992년 서울대 지리학과
- 조선왕조실록에서의 기록: 경복궁 뒷산에 논밭 개간, 나무를 베거나 하는 걸 못하게 하라 라는 내용이 있음
- 왕궁이 내려다보이니 보안상 문제와 왕궁 근처에서 딴 짓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더 클 것
- 같은 이유로 청와대 뒷길은 최근에야 공개됨
- 헬마우스: ‘조선인들은 말을 더럽게 안듣는구나, 원래 한국인들이 옛날부터 지도자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아니었구나’를 느낌
- 하지만 최창조 교수는 위의 내용을 ‘이 자리가 혈자리고 흉지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라 금한 것’이라 해석
- 1992년 7월 11일 경향신문, 1992년 7월 29일 동아일보에 최초 기고
- 이 둘의 기사가 기원으로 보임
-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이런 글을 쓰니 당연히 같은 해에 학교에서 쫓겨남(공식적으로는 자진퇴사)
- 1992년 7월 11일 경향신문, 1992년 7월 29일 동아일보에 최초 기고

- 1992년 이전에는 어떤 풍수쟁이도 청와대 얘기는 안함
- 물론 이전에 ‘청와대는 흉지고, 들어가면 폐가망신한다’ 라고 했다면 이미 남산 지하에서 코렁탕을 먹었을 것
- 이렇다면 진짜 흉지는 남산
- 물론 이전에 ‘청와대는 흉지고, 들어가면 폐가망신한다’ 라고 했다면 이미 남산 지하에서 코렁탕을 먹었을 것
- 지금 청와대 흉지론을 말하는 풍수쟁이의 논거는 최창조 교수의 1992년에 쓴 글이기 때문에 모두 구라
- 청와대와 경복궁은 상관없는 곳이지만, 같이 묶인 터여서 나쁜 터라면 조선은 500년이나 유지된 이유는?
- 조선일보가 전직 대통령이 당한 안 좋은 일들을 나열하지만, 전두환은 장수한 건 얘기 안함
- 풍수쟁이라는 사람이 독학으로 풍수를 익혔다는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의 논거를 가져온다는 건 앞뒤가 안 맞음
- 동아일보에 ‘청와대를 옮기자’라는 기고문이 있는 코너명 이생각저생각 => 이런 섹션은 칼럼으로 쳐주기에는 짜칠때 사용되는 곳. 즉 되는데로 지껄여봐라
- 청와대 터는 북악에서 경복궁에 내맥이 내려오는 길목. 용에 비유하면 몸통자리. 땅을 훼손하면 안되고 보호해야 한다. 라는 내용이 최근 기사들에 다 들어있음
그것은 알기 싫다 455b
- 최창조 교수는 서울대 교수다 보니 이후에 여러 곳에서 부르게 되고, 영향력이 커짐
- 결국 김영삼 대통령에게 까지 영향이 닿았고, 93년 10월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구 본관(조선총독의 관저 -> 이승만때 경무대 -> 윤보선 때 청와대 본관) 철거할 때 중요한 논리로 동원됨

- 이후 풍수지리가 유행하며 일본이 심어놓은 말뚝뽑기 같은 것들이 유행함 -> 3년 전에 공사현장에서 나온 말뚝이라는 것도 나옴 -> 극우들이 조선인의 미개함을 논할 때 동원됨 -> 국정농단 때는 박정희 묘의 잔디고정용 침을 말뚝이라고 하기도 함
- 흉지에 집을 지었으니 제 명에 못 살것이다로 연결되는 최창조 교수의 주장
- 청와대 주변에 민가 많음
- 전두환, 노태우도 장수함
- 최규화, 윤보선 같은 사람은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면 ‘그 사람들은 짧게 살았다’ 라고 반박함(해를 넘기는 수준이라 그리 짧지도 않음)
- 바로 옆의 경복고 출신은 정재계에서 잘 나가는 이유가 설명이 안됨
- 인터뷰를 하면 청와대 얘기하면서 종이를 내미는데, 내용은 과거 청와대 살았던 인물과 운명이 적혀있음
- 사이토 마코토: 3대 총독. 일본에 돌아간 후에 1932년 총리대신에 오르고 1936년에 젊은 장교들에게 살해됨(2·26 사건)
- 야마나시 한조: 4대 총독. 뇌물을 받은게 드러나서 총독자리에서 물러남
- 뇌물 받은게 터 때문?
- 5, 6대 총독은 언급 없음
- 5대 총독: 3대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
- 6대 총독: 학장이 된 후 공직에 나가 전국 최고 득표수로 당선. 88세까지 최고령 참의원이 됨
- 미나미 지로: 7대 총독. 2차대전 전범재판에서 무기형 선고 받음
- 당시 조선 총독은 전범이 아니면 올 수 없는데?
- 이 자리에 온 게 터 때문?
- 가석방 되어 집에서 사망
- 고이소 구니아키: 8대 총독. 2차대전 전범재판으로 종신형 선고받고 옥사
- 아베 노부유키: 9대 총독. 아베 전 총리의 증조 할아버지. 한반도에 있던 일본인들을 외면하고 짐을 가득 실은 배에 가족들만 태워서 부산에서 일본으로 도망치다 푹풍을 만나 짐을 다 잃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수모를 겪었다. 항복문서에 조인해서 미국 하지 중장에게 건내는 치욕을 겪음
- 후손 중에 일본 총리가 2명에 장관도 수두룩 하게 나왔는데 풍수 때문에 신세를 조진 거?
- 당시에도 대마도로 가는 배는 자주 회황했음
- 사람은 그대로인데 짐만 버렸다는것도 당시 선박 수준에서는 말이 안됨
- 이승만: 객사
- 하와이에서 아내와 행복하게 살다가 요양병원에서 사망. 이런게 객사?
- 윤보선: 국립현충원 안장 거부 당함. 실권자가 아니었으니 집주인이라기 보다는 세입자
- 박정희: 부하에게 죽임을 당함
- 전두환, 노태우: 백담사에 유배
- 김영삼: 재임 중에 무능을 의심받음. 아들 수감됨.
- 김대중: 두 아들이 구속됨
- 2004년 인터뷰라서 여기까지만 적혀있고, 이후에는 계속 덧붙여 나가고 있다고 함
- 청와대 수립 후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면,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후에 평탄한 삶을 산 게 오히려 이상
- 총독이든 대통령이든 최고집권자가 된다는 것은 정치적 격변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 총독을 안했으면 저런 일도 안당했을 것이고, 독재를 안했으면 궁정동 안가에서 총을 맞지도 않았을 것이고, 쿠데타를 안 일으켰다면 유배도 안 갔을 것
- 육영수는 장충체육관에서, 박정희는 부하들 다툼 중재를 못해서 궁정동에서 총에 맞았는데 왜 궁정동은 흉지 얘기가 없는가?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 해방 이후에 대한민국 대통령 말로가 안좋다는 이유로 청와대 흉지론이 나오는건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선진국까지 갔는데 터가 안 좋은게 말이 되느냐?
- 대통령이 불행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불행이지 국가의 불행은 아니었다. 그들은 본래 역사의 하수인이었다.
- 전형일 명리학자
- 최창조 교수의 얘기를 그대로 사용함
- 민주주의를 자체적으로, 시민들의 노력으로 이식을 했는데도 위쪽에 있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뒤늦게 민주주의를 출발한 공화정의 국가들의 권좌에 오른 사람들이 주로 이런 읽을 겪음. 남미도 동아시아도 아프리카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