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기

내집 마련기

2005년 12월 2x일에 서울에 올라와서 등촌동 SBS공개홀 바로 맞은편의 오피스텔에 살던 형에게 얹혀살기 시작했다. 형이 갑자기 결혼하면서 나 혼자 살기 시작했고, 9호선 때문에 오른 전셋값 때문에 2년 뒤엔 재계약 없이 이사를 해야 했다. 마침 이직을 해서 건대입구역으로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퇴근하고 건대에서 7호선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부동산을 들르며 집을 알아봤다. 그러다 찾아낸 용마산역 근처의 전세 1200만 원짜리 옥탑방!  저렴한 가격 + 옥탑의 로망으로 당장 계약했다. 지금이야 온라인 커뮤니티 생활을 많이 하니 옥탑의 단점에 관해 물어봤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건 생각도 안 했다. 얼른 이사하고 싶었고, 돈을 최대한 적게 쓰고 싶었다.

 

옥탑 생활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8월 초 한여름의 대낮에는 보일러 온도계에 나타나는 온도가 42도를 찍은 적도 있고, 겨울에는 방 안에서도 입김이 나왔다. 이불 밖으로 나온 얼굴과 손은 금방 시려서 한겨울에는 장갑을 끼고 자야 했다. 하지만 봄과 가을에는 생활하기 딱 좋았다. 다행히 나는 여름에 강한 편이라 에어컨이 없어도 버틸 수 있었지만, 겨울은 정말 힘들었다.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 방풍 작업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습기가 찼고 바로 곰팡이가 생겼다. 추워도 출근할 때 창문을 조금이라도 열어두고 갔으면 덜했을 텐데…. 첫해 겨울에 생긴 곰팡이를 봄에 약품 사서 심한 부분만 제거했다. 그다음 해부터는 환기에 좀 더 신경을 써서 그나마 아래 사진 정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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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없어서 심해 보이는데, 평소에는 짐으로 다 가려진 부분이라 잘 티가 안 난다.  게다가 사진의 천장 부분에 신문지가 붙어있는데, 환기를 제대로 안 하다 보니 천장 벽지에 물이 고여서 떨어지는 걸 방지하는 용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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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새로 도배한 사진.

 

이 정도 상황이면 보통은 이사를 했겠지만, 나는 그게 너무 귀찮았다.

옥탑 생활의 불편함 > 이사갈 집 찾기(전세 + 저렴한 관리비 + 군자역 ~ 면목역 사이) + 이사 업체 연락  + 보증금을 떼일 걱정 + 모르는 사람과의 전화통화 + 이삿짐 싸기 + 이삿짐 풀기 = 귀찮음

겨울에 추위에 떨며 이불 속에서 ‘날 풀리면 이사해야지’를 다짐했지만, 봄이 되어 따듯해지면 ‘귀찮으니 좀 더 버티자’라며 옥탑에서 2008년 7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8년을 살았다.

 

그 사이 1600만 원으로 시작한 연봉은 지금은 아주 많이 올라서 이제는 한 달 저축액이 신입 시절 월급보다 많아졌다.

  •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계부를 꾸준히 썼고,
  • 인간관계가 좁아서 모임도 거의 없고,
  • 담배는 원래부터 안했고,
  • 유지비 걱정에 자동차를 사지 않았고,
  • 대화스킬이 별로라서 여자와의 인연은 없었고,
  • 여행도 별로 안 좋아하고,
  • 비싼 취미 생활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티끌이 계속 모여서 자산이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자산이 늘어나니 가계부 쓰는 재미도 늘어났다.

 

작년에 결혼과 동시에 집을 산 직원이 있는데, 나보다 더위와 추위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집이 춥다덥다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아서 괜찮은 걸 샀구나 싶었는데, 최근에 출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근처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다며 나에게 집을 살 것인지를 물어봤다.

벌써부터 추위가 걱정되는 이번 겨울 + 최근에 예금이 만기되어 집 살 돈 일시불 지급 가능 + 내가 선호하는 7호선 근처 + 용마산역보다 번화가인 사가정역

집 구경 전에 이미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뒤 법무사를 방문해서 등기작업을 했고, 구매대금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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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11월 1일에 이미 이사를 나갔고, 나는 주말을 이용해서 깨지기 쉽거나 용달차에 쌓기 모호한 짐들을 미리 옮겼다. 짐을 갖다두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사라고 적힌 차가  보였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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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다이사 http://blog.naver.com/dltk4448/220408941000

길이 막혀서 제시간에 못 오거나, 다 와서 우리 집을 못 찾는다거나 하는 상황을 걱정했는데, 우리 집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업체라 그런 걱정이 전혀 없다. 걱정이 많은 나에게 이런 고민거리가 사라지는 건 매우 좋은 일이다.

 

강서구에서 면목동으로 올 때야 짐이 별로 없었지만 8년을 살면서 늘어난 짐 때문에 당연히 1톤 화물차로는 부족하다 싶었는데, 수영장 가시던 사장님이 바로 오셔서 집을 둘러보며 1톤이면 충분하다고 하신다. 이사용 1톤 트럭은 더 큰가? 게다가 옥탑에서 내려가는 계단이 좁고 가파르므로 사다리차도 써야 한다. 동네주민이라 저렴하게 해주신다고는 하는데, 다른 곳은 안 알아봐서 얼마나 저렴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1주 뒤에 이사하기로 계약했다.

 

이사 전날 미리 바구니를 받아와서 부엌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당일 아침은 6시에 일어나서 아침부터 먹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다리차가 9시에 온다고 했으니 그 전에 최대한 많이 해야 했다. 우습게도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던 옷을 싸고 나니 방의 반이 비었다. 옷 때문에 짐이 많을 거라 착각한 것 같다. 다행히 9시 전에 냉장고와 세탁기를 제외한 모든 짐을 다 쌌다. 9시에 사다리차와 화물차가 왔고, 옥상의 짐을 차에 싣는데 겨우 30분밖에 안 걸렸다. 보증금을 받고, 새집으로 와서 짐을 올리는데 40분 정도 걸렸다. 몇 시간이면 끝날 작업을 귀찮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뤘던 게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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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는 저녁때 연락해주면 가지러 오신다고 하며 그냥 가셨다. 만약 집 근처 업체가 아니었다면 잽싸게 짐 정리하느라 더 고생했겠지?

 

옥탑에선 방 하나에서 하던 일들을 여러 공간으로 나눠야 해서 아직 짐 정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보일러 안 틀어도 반바지 입고 있을 수 있는 것만 해도 매우 마음에 든다. 그동안의 고생이 추억이 되어서 다행이다. 이젠 그동안 사고 싶었던 좋은 제품들로 하나씩 바꿔가야겠다. 일단 밀레 세탁기와 청소기부터!

  • 처음에는 개발 관련 게시글로 블로그에 들어왔다가 생활 Life 게시글도 재밌게 잘 챙겨보고 있습니다! 🙂

    • 보안프로그램 깔린 곳으로 출근하느라 개발게시물은 못 올리고 있어요 ㅠㅠ

      • 아쉽네요 ㅠㅠㅠ 간단한 예제랑 친근한(?) 말투를 사용하셔서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ㅠ
        그래도 일상 관련 게시글도 재밌으니 많이 올려주세요 ㅎㅎ!